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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류큐 왕국

오키나와현은 과거 류큐 왕국이라는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독자적인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1187년 슌텐(舜天) 왕통이 시작되고, 이후, 에이소(英祖)왕통, 삿토(察度) 왕통으로 이어집니다. 삿토 왕은, 중국에서의 초청에 대해 1372년 다이키(泰期)를 중국에 보내 공물을 바칩니다. 이때부터 주변국이 중국에 공물을 바치고,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공과 중국 황제가 주변국의 군주를 승인하는 책봉 체재가 시작됩니다.

당시의 류큐는, 북산(北山), 중산(中山), 남산(南山)으로 나뉘어 서로 싸우고 있었지만, 제1 쇼 씨(尚氏) 왕통인 쇼하시(尚巴志) 왕이 싸움에 이겨 삼산 통일(三山統一)을 이루었습니다. 그 후, 1470년에는 이제나지마(伊是名島) 출신의 가나마루(金丸)가 왕위에 올라 쇼엔(尚円) 왕이라 칭하고, 제2 쇼 씨(尚氏) 왕통이 시작됩니다.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류큐는 중국, 일본, 조선, 동남아시아 각국과 중계 무역을 통해 크게 번창했습니다. 후에, 대교역 시대(大交易時代)로 불린 이 시대의 번영의 모습은, 만국진량의 종(万国津梁の鐘)의 명문(銘文)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1609년 사쓰마 번(薩摩藩)이 군사 3,000명을 이끌고 류큐를 침공합니다. 이후, 류큐는 일본의 막번제(幕藩制) 지배하에 편입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유지하며, 중일 양국의 외교적 관계하에 왕국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02.왕국시대의 슈리・나하

교역국가로서 아시아의 바다에서 웅비했던 류큐에는, 다양한 문화가 왕래했습니다. 그 결실로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독자적인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그 중심지이었던 것이 슈리와 나하, 즉 현재의 나하시입니다.

현재의 나하시는, 슈리(首里), 나하(那覇), 마와시(真和志), 오로쿠(小禄)로,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4개의 지역에 의해 이루어져 있습니다.
슈리는 왕성(王城)인 슈리성(首里城)을 중심으로 형성된 왕도(王都)로, 왕국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나하는 나하항을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항구도시로 발전했습니다. 도마린항을 끼고 있는 도마리무라(泊村),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과 자손이 살고 있는 구메무라(久米村)도 당시의 나하에 인접해 있습니다.

또한, 과거의 나하는 「우키시마(浮島)」라 불리는 외딴 섬으로 1451년에 건조 된 「장홍제(長虹堤)」(약 1km의 해중도로)에 의해 대안(対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마와시 와 오로쿠지역(당시 마와시 마기리), 오로쿠마기리는 도시근교 농촌으로서, 슈리나 나하 등 도시 생활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03.오키나와현 설치

1872년, 메이지 정부로부터 일방적으로 류큐 번(琉球藩)이 설치되고, 1879년에는 육군과 경찰을 파견해 오키나와 현이 설치되었습니다(류큐 처분).
이때, 현청이 나하로 놓인 것으로, 나하가 정치 ·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1921년 5월 20일, 당시의 슈리구·나하구에 제도가 시행되어, 오키나와 현에서 처음으로 「시」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1944년 10월 10일 공습에서는 미군의 공습을 받아, 나하시 지역의 90%를 소실, 게다가 이듬해의 미일 양군에 의한 지상전에서 많은 인명과 문화유산을 잃었습니다.
전후의 오키나와는 미군의 통치하에 놓여, 토지 강제 수용에 의해 나하 시내에도 나하 군항 등의 미군 시설이 건설되었습니다.

또한, 나하시는 1954년에 슈리시·오로쿠손(小禄村)과, 1957년에 마와시시와 합병하여, 현재의 나하시 지역이 되었습니다.
27년간의 미군 통치를 거쳐, 1972년 5월 15일, 오키나와의 시정권(施政権)이 일본에 반환되어, 새로운 오키나와 현이 탄생했습니다(본토 복귀). 그러나, 기지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떠 안은 채로의 복귀였기때문에, 그것은 현재에도 큰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2000년에는 주요국 정상 회의 「규슈 · 오키나와 서미트」가 개최되어, 시내의 슈리 성터(首里城跡), 시키나엔(識名園), 소노향우타키(園比屋武御嶽石門), 다마우둔(玉陵)이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되는 등 오키나와가 세계에 널리 소개되었습니다
긴 역사 속에서 류큐·오키나와 역사의 무대였던 나하시. 지금도 역사와 문화를 짙게 전하는 도시로서, 더욱 품격 있는 현청 소재지로서 발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대 구분

연표